[특별강연]9세기 신라 대외교섭에서 전통의 재발견과 그 의의 -紀三津 방환을 둘러싼 논의를 중심으로-

[특별강연]9세기 신라 대외교섭에서 전통의 재발견과 그 의의 -紀三津 방환을 둘러싼 논의를 중심으로-

발표자: 고미야 히데타카(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일시: 2026년 2월 12일 16:00~18:00

장소: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304호

문의: dokdo@snu.ac.kr


2026년 2월 12일 아시아의 문명교류 프로그램 특별강연이 개최되었다. 이번 강연은 <9세기 신라 대외교섭에서 전통의 재발견과 그 의의-紀三津 방환을 둘러싼 논의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강연은 834년 8월 신라에 파견되었던 일본 사신 紀三津을 둘러싼 사건을 소개하며 시작되었다. 일본은 견당사가 조난당하여 신라에 표착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미리 신라에 통지하여 도움을 기대하고자 기삼진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기삼진은 조정의 명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신라와의 우호를 도모하기 위해 자신이 파견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신라에서는 일본의 의사와 기삼진의 발언에 차이가 있음을 심문하였으나 허실을 판단하기 어려웠고, 대국의 관대한 도리와 구호를 중시한 전례를 들어 紀三津을 방환하겠다는 내용의 집사성첩과 함께 기삼진을 귀국시켰다. 이 사건을 기술한 『속일본후기』의 편찬자는 紀三津를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 평가내렸다.

한편으로 『속일본후기』의 편찬자는 기삼진 사건의 사정을 후세 사람들이 면밀히 알 수 있도록 신라에서 송부한 집사성첩 전문을 전재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高表仁의 전례를 거론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었다. 이전부터 신라 사신은 사신을 호송하는 역할의 ‘송사’로 활약하기도 하였는데, 고표인은 신라의 송사와 함께 632년에 일본에 도래한 당의 사신이었기 때문이다. 즉, 집사성첩에서 고표인을 언급한 것은, 신라가 7세기의 전례를 인지하고 재확인하였던 사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신라는 기삼진 사건과 관련된 당-일본 외교에서 과거 자국이 담당해 온 역할의 중요성을 일본 측에 재확인시킨 것이다.

9세기 무렵 신라가 놓인 대외 교섭의 현실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해민 집단’으로 일컬어지는 세력이 외교 절차에 지장을 초래하는 문제로 인식되거나, 장보고가 일본 太宰府와 교섭하는 등 교섭의 형태가 국가 간 외교에 한정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신라 측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을 것인데, 신라 조정은 이러한 외교 현실을 인식한 상태에서도 선례에 근거한 전통적인 교섭 방식을 선택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발해와 신라 사이에 벌어진 쟁장 사건에서도 관례가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되었는데, 이 또한 외교 교섭에서 전통을 중시하는 신라의 태도를 반영한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발표자는 기삼진이 가져온 집사성첩을 교섭의 형태가 다변화되는 과정에서 신라가 전례를 거론함으로써 전통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채워나가려 한 시도로 해석하였다. 8세기 중엽 이후 일본 견당사의 송사 역할을 발해가 담당하는 사례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집사성첩에서 언급된 전례는 그간 자신들이 맡아 왔던 견당사에서의 송사 기능을 자신들 쪽으로 재정착시키려는 의도가 있으리라고 해석하였다. 발표 후에는 일본 견당사의 항로, 신라에서 외교 교섭의 전례를 축적하였던 방식, 고표인의 사행이 신라와 일본에서 갖는 의미 등을 둘러싼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를 끝으로 특별강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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